제 1계 만천과해
손자병법 삼십육계 원문에 이런 해설이
있습니다. "사람은 흔히 보아온 것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않게 된다. 그러한
약점에 계략을 찔러넣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헛점을 찌르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눈에 띄이게 하는 곳에 깃들게 하는 것이다. 꼭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備周則意怠,常見則不疑.陰在陽之內,不在陽之對.太陽,太陰)". 흔히 쓰이는 말로 쓰자면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 정도가 되겠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속담하고도 일맥상통
한다 볼 수 있겠습니다. 본디 여기서 '천(天)'은 천자(황제)를 뜻하는 것으로서, 옛날
당나라 태종이 바다를 두려워하여 배 타는 것을 저어하자, 장사귀라는 사람이 거대한
배를 만든 후 거기에 흙을 깔고 집을 짓고는 “여기는 육지입니다” 라며
태종을 초대해 잔치를 베풀어 흥겹게 노는 사이 바다를 건넜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흔히 네이버를 두고 자아도취에 빠져 나태하다느니, 배가 불러서 고객을
우습게 안다느니 하며 비난하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 역시
비슷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포털 사이트로 대표되는 인터넷 대기업들은 겉보기에 굉장히
둔해보입니다. 마치 타이타닉과 같이 앞에 빙산이 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키를
돌리더라도 자기 무게를 못이겨 결국 들이받고 영원히 침몰할 것 같은 크고
무식한 배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조직의 규모가 커지게 되면 의사결정이
상대적으로 느려지고 전략의 선택의 폭에 제한이 걸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조직 자체가 잠들어 있거나 멍~하게 정신 놓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 무서운 상대죠, 마치 호랑이와 같이 거대한 몸집을
갖고도 날렵하게 움직이니까요. 네이버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서비스가 나옵니다. 단순히
기존 서비스의 유지보수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고민하고 또
움직이고 있습니다. 얼마전 검색창 광고를 중단하겠다는 발표에 대해 이익도 얼마 되지
않으면서 생색낸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사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돈을 포기하고 제대로
된 인기검색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기반을 만든다는 결정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겉보기에 별로 달라져 보이지 않으면서 은근히 변해가고 있습니다.
삼국지연의가
아닌, 정사 삼국지 吳志 태사자전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융이 황건적에 포위되어 곤란할 적에, 태사자가 그 포위를 돌파하려 하나 워낙
적의 포위가 튼튼하여 이것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에 태사자는 마치 포위를 뚫을
것 처럼 달려나가서는 과녁에 활을 쏘아 맞추는 연습을 합니다. 황건적들은 처음엔
바짝 긴장했으나, 다음 날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사흘째에는 태사자가 나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틈을 타 태사자는 전력으로 말을 채찍질하여 유비에게
원군을 청하러 가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새로운 서비스가 가끔 나와도 "그래봤자
네이버", "그래봤자 싸이월드"라고 신경쓰지 않는 사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볼
때쯤이면 지평서 끝까지 네이버, 다음, 싸이월드의 깃발이 너울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포털 사이트는 절대 변화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자만에 도취되어 있을 것이다"는 생각은, 정말 많은 분야에서 필연적으로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중소 IT기업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예전에 올렸던 NHN UX Lab에 대한 글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NHN 에 UX Lab 이 있다면 다음(Daum)에는 한메일팀이 있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물론 분야도 특성도 다르고, 1:1로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만, 각각의 회사가 갖는 최고 노하우의 정수 중 하나라는 점 그리고 잠자는 것 같이 보이는 조직속에서 그 어떤 벤쳐기업보다 활발하게 바짝 긴장하고 뛰는 파트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이버는 사악한 슈퍼갑이고, 우리는 정~말 도덕적이라 그들과 함께하지 않겠다" 같은 소리는 헛웃음만 나오는 자기미화에 도취되어, Evangelist 들의 이쁜 소리에 리플달고 단꿈꾸는 사이, 오늘 밤에도 그 슈퍼갑들의 사무실 역시 불이 켜져있을 겁니다.
우리가
지금 대수롭지 않게 보아넘기고 있는, Beta 꼬리표와 함께 "실험적인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널어놓는 포털 서비스들 속에 향후 10년간 누구도 저 분야에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 무시무시한 서비스가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종종
이 병법은 의역되어 상대에게 자신의 의중을 들키지 않도록 주의하여 상대를 방심시킨
뒤 치고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로 쓰이는데, 상대를 속여 얕은 꾀를 부리는
기만과는 다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일본 속담에 현명한 매는 발톱을
숨긴다(能ある鷹は爪を隱す)는 말이 있습니다. 원 뜻은 다르지만 우리말로 옮기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의 의역으로도 설명할 수 있으려나요. 작은 동물들은 상대와 싸울때 몸집을 커
보이게 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큰 동물들 처럼 달려들어 공격하기보다, 위협적인
소리와 동작으로 상대를 물러나게 하려는 전략을 씁니다. 왜?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승리를 확신할 수 없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자신도 심각한 피해를 입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죠. 싸이월드의 "타도 네이버" 표명이야 네이버 대 다음의 2강 구도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몸부림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다음은 결코 대놓고 네이버를
까부수겠다든가 하는 격한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언뜻 자사 서비스에 대한 방어적
태도인 듯 보이면서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충분히 공격적인, 그야말로 현명한 전략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굳이 칼날을 세워서 적을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덧붙여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까요. "현자(賢者)는 역사로부터
배우고, 우인(愚人)은 경험으로부터 배운다"는 말이 있지만, 딱히 근거로 삼을만한 정보가 없어
경험으로부터 이야기하자면, 저에게 청(소)년 기업이 망하는 이유를 꼽으라 한다면 주저없이 "자만심"을
꼽겠습니다. 창업하게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사장 명함 만드는 일입니다
(사무실 구하는 건 쉽지 않으니). 어딜 가도 듣게 되는 "어린 나이에
대단하네요" 라는 칭찬과 "사장님" 이라는 직함의 달콤함에 빠져, 처음에는 기성 기업들이
하지 못하는 신선하고 대담한 발상을 무기로 들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이지만
어느새 "초심"은 사전에만 있는 늘어진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더 큰 물이
있음을 보지 못하고, 만천과해인 줄도 모르고 어른 기업의 웃는 얼굴을 보고
우습게 봐버리는 우를 범함으로서, 유일한 무기를 잃고 방황하다 결국 문을 닫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상대를 가벼이 여기는
것은 패배로 가는 지름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움을 얻은 글 : 병법가님의 블로그 "시대의 병법가"


